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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책 리뷰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by 조창대 2020.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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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중순즈음에 코로나로 개강이 늦춰졌다. (나 대학교 3학년) 자격증 시험도 줄줄이 취소되고 알바하면서 멍 때리다가 책이나 읽자 하고 알바 끝나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갔다. 책을 읽겠단 생각이 든게 완전 뜬금없을 정도로 난 평소에 책을 안읽는다.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1학년 때 시험기간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너무 하기 싫어서 회피하려 아무거나 골라 몇 자 읽은 정도? 알바가 정말 심심하긴 했나보다.

어쨌든 홍대의 영풍문고로 가서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시를 읽어볼까'하고 시집을 뒤적거리는데 중년 여성분들 2명이 이 시집 어떻냐고 물어보셨다. 내가 시집을 뒤적거리는 모양새가 퍽 지식인같았나보다 ㅋ "저도 오늘 처음 보는거예요ㅎㅎ;" 이러며 멋쩍게 웃자 그쪽에서 자신들과 동지라고 생각했는지 "아유, 우리도 처음이라 뭐가 재밌는건지 모르겠어요~"라며 친근하게 웃어주셨다. 내가 이 얘기를 쓰는 이유는 그냥 지식인같아보였던거 자랑하려고.

본론으로 와서 인문학 코너를 돌며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보았다. 오리그림이 그려져 있는게 귀여웠다. 

책 집어들고 의자에 앉아서 읽어보는데 참 공감가는 내용도 많고 관심있어하던 페미를 잘 다루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너무 구구절절 맞는 말만 담겨있어서 살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은 원래 자기 생각이랑 맞는 얘기에 더 애착을 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틈날 때마다, 알바할 때마다 읽었다. 띵언이라 생각한 곳에 열심히 밑줄치면서 읽었다. 대학생에게 개강이 미뤄진다라는 것은 이렇게 유익하고 생산적인 일이다.

책은 총 3부로 되어있다. 밑줄친게 많아서 1부씩 끊어서 분류해야겠다.

 

1부 -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탄생

1부는 '역차별'로 시작한다. 역차별은 참 모순적인 말인거 같다. 소수자에게 조금의 특권을 주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 이기적인 주장이다. 지하철 임산부석, 여성 전용 주차 구역, 여성할당제 등이 역차별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들이다. 물론 여성 뿐만 아니라 장애인을 위한 정책에도 그렇다. 책에 나오는 사례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청각장애인들은 토익 점수대신 다른 것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 등등.. 어떻게 다수의 입장에서 차별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이 되어있다.

"내가 속한 집단은 차별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 사회라고 생각해야 안심이 된다."

일단 내가 '사람'이고 기본적인 교육을 받은 이 사회의 '지성인'이라면, 차별은 용납할 수 없지. 나에게 주어지는 이득이나 특권은 없는데 왜 쟤네한테만 잘해주는거야? 이건 용납할 수 없어!

내가 이해한 역차별의 근원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한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당신은 소수자에 대한 제도가 나오기 전까지 차별당하거나 배제당한 경험이 있는가?

'차별의 교차성'에 대한 주제도 흥미로웠다.인간은 양면적이고 다양한 존재인만큼, 자신이 가진 신체적, 사회적 특성이 각각 다르다. 여성으로서 차별받는 것도 있지만 다른 특성을 이유로 타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일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요즘 핫한 트렌스젠더의 숙대 입학 논란이 떠올랐다. 남성과 여성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현실은 쉽게 풀릴거 같지 않다. 나도 트렌스젠더에 대해선 생각을 다 정리하지 못했다. 으으

 

2부 - 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

'비하성 유머'. 어렸을 때 본 개그프로에서 흔히 하던 흑인 분장을 떠올리면 될 거 같다. 아니면 맹구 분장. 그들의 외관을 우리 멋대로 우스꽝스럽게 해석하고 재현하며 우리끼리 낄낄대며 조롱했던 셈이다. 정말 음침하기 짝이 없다. 어렸을 땐 왜 그게 웃겼지? 책에서도 "도대체 왜 웃긴가?"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며 생각해볼 수 있게 했다. 궁금해 미칠뻔한 직전에 '우월성 이론'을 들고 와서 내 맘속에 사이다를 뿌려줬다. 인간은 자신과 동일시하는 집단을 우월하게 느끼게 하는 농담에 더 재미있어 한다는 것이다. 이런거 볼 때마다 성악설이 맞는거 같다. 예전에 교양수업때에도 '외집단 동질성 효과'에 대해 배웠는데 타그룹의 개개인의 특질은 보려 하지 않고 일반화시켜서 쉽게 이해하려는 경향을 설명하는 이론이었다. 타그룹은 모두 고만고만~이라며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말했는데, 우월성 이론이 딱 거기서 가지쳐서 나온 이론인거 같다. 어찌보면 정보의 과부화를 피하려는 뇌의 이간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겸손하라는 공자의 말씀이 떠올랐다. '병신'이나 '바보'도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던 말이었는데 진짜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편견이 있는 표현들을 나 혼자 줄이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다른 사람이 그런 표현을 썼을 때 넌지시 잘못됐다라고 말할 수 있는 찐어른이 되고 싶다.

어떤 차별은 공정하다는 생각 때문에 지워지기도 한다. 최근에 친구가 태그해준 모대학교 대숲 글을 보고 딱 이 책내용이 떠올랐다. 기업이 블라인드로 인재를 채용하는 동시에 지역할당제나 여성할당제까지 적용하면 수도권 대학에 대한 역차별이란 내용이었다. 블라인드 채용은 찬성하지만 그것으로 이미 평등해졌기 때문에 할당제가 따로 필요하지 않단 이야기였다. 능력과 경쟁에만 치중한 글을 보고 의아했다. 능력주의가 정말 공정한 규칙이 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전제가 있다. 우선 무슨 능력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하는 평가기준을 만들고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편향이 없어야 한다. '지방대라는 인식과 여성이라는 편견으로 차별이 행해지는 상황에서 블라인드 채용만 한다고 모든 불평등이 사라질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또한 모든 것이 능력주의로 행해진다면, 획일적인 평가기준으로 우월과 열등을 나누고 어떤 일에 실패하면 무조건 패자라는 모멸감이 들 것이라고 한다. 많은 생각을 했던 주제였다.

이 책은 정말 다방면에서 이뤄지는 차별을 다뤄서 차별을 큰 폭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거 같다. 퀴어 축제나 최근에 있었던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 시위도 다뤘다. 공적인 장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차별이 사적인 개인의 특성에서 시작된다. "왜 사람들한테 민폐끼치게 여기서 XX이야!" 그 때 기사에 대한 많은 의견이 이것이었다. 얼핏 들으면 납득가는 당연한 비판인거 같지만, 알고 보니 혐오가 섞인 비난이었다.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알고 싶지도 않으니 나한테 피해끼치지 말고 내 심기가 상하지 않게 조용히 사라지라는 말이다.

 

3부 -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자세

이 장에서 가장 인상깊었던건 '공공'과 '개인의 권리' 사이의 모호함이었다. 헌법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한 '공공'과 '개인의 권리'의 우선순위를 우리가 정하고 지키기란 쉽지 않다. 아마 이 문제는 인류가 멸망하기전까지 난제로 남아있을거 같다. 현재 헌법에선 개인의 기본적 권리가 공공질서를 위해 제한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공공'이라는 명분으로 다수가 소수를 더욱 억압하고 공공이 아닌 장으로 밀어낼 수도 있단 뜻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제일 인상깊었던 부분이라 메모도 했다 ★★ 공공의 이익만을 내세우며 부당한 차별을 묵살시키는 법에 반대하는 '시민 불복종'은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 실현에 꼭 필요한 행위이므로, 다수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행위를 멀리하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불평등한 사회가 고단한 이유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하도록 부당하게 종용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을 이겨낸 영웅의 성공신화'라며 열광하고 칭송한다. 이젠 개천에서 용이 날 수가 없는 사회 구조인데, 언론과 미디어는 자꾸 이런 극히 드문 사례들을 뻥튀기하며 차별이 없다고 믿게 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에겐 자연스레 '어떤 환경 때문도 아닌 너의 능력 부족 문제야' 라는 생각을 갖도록 한다. 나는 이게 능력주의와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책에서도 능력주의와 연결지어서 좋았다. 능력만 강조하고 다른 어떤 상황도 고려하지 않는 일차원적인 생각은 차별을 보지 못하게 하고 정당화한다. 억울하면 성공해 라니.. 억울이랑 성공이란 단어 사이에 무슨 연관관계가 있는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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