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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책 리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마이클 센델(Michael J. Sandel)

by 조창대 2022.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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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쯤엔가 센델 교수님의 「정의란 무엇인가」 저서를 인상깊게 읽었다.

서점 어딜 가나 그 책이 베스트셀러 매대에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어서 안 볼 수가 없었다. 정의~ 책을 읽을 때에도 책에서 나오던 사례를 접하며 막연히 떠오른 생각들, 느꼈던 감정들을 그 다음 장에서 정확히 캐치해서 정의내려주는 걸 보고 소름돋았던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 책을 읽고 나서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철학가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세상에 적용되는 정의, '옳음'이란 무엇인지 큰 틀을 잡을 수 있어서 유익했다. 책 하나에 샌델 교수와 학생들의 정의에 관한 치열한 토론이 농축되어 있다는 느낌..? 그래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주저하지 않고 펼쳤다. 역시 읽을 때 순간순간 드는 생각들을 예상하고 다음 장에 설명하신 거 보고 소름 돋았다. 진짜 간파당하는 느낌. ㅋㅋ 

하긴 이 책이 '시장과 도덕(Markets & Morals)'이란 강의에서 시작했다고 하니, 이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이 얼마나 다양했겠는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말하는 건 단 한가지이다.

신체의 장기, 시민의식, 봉사정신, 의무감 등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시장이 개입하면 그 재화의 가치는 변질된다. 

 

 

 

줄서기의 도덕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하나의 사례로 샌델 교수님은 공립극장에서 주관하는 여름 셰익스피어 무료 공연을 예로 든다. 이는 시에서 제공하는 공연으로, 관람료 지불 능력과 관계없이 부자든 노숙자든 모두 한 공간에서 셰익스피어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사람들은 공연을 보며 인간성에 대한 공감을 얻을 수도 있고, 셰익스피어의 광팬이라면 공연을 보며 돈으로 살 수 없느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공연은 시에서 제공해서 그 자체가 공적인 의미를 띠고, 삶에서 지켜야 하는 도덕과 선, 교훈을 얻는 의미에서 공익을 실현한다. 그런데 이 공연이라는 재화에 시장이 개입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이 공연의 입장권을 받으려 할 때 돈이 있는 사람들은 125달러를 지불하고 라인스탠더, 즉 대신 줄을 서주는 사람을 고용한다. 혹은 입장권을 얻어서 높은 가격을 지불하려는 사람에게 돈을 받고 판매한다. 대리 줄서기나 암표 거래가 공연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사실 돈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줄서기를 시킨다고 해서 셰익스피어 공연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얻을 수 있는 입장권의 수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혹자는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샌델 교수님은 그럴 때마다 재화의 본래 의미를 생각해보라고 한다. 시에서는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구분없이 모두 셰익스피어의 공연을 향유할 수 있도록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은 공익의 성격을 띠고 공연을 보는 관객의 마음속에서 벅차오름이나 행복감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꽃피운다. 하지만 공연 입장권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가격이 붙는 순간, 공연 입장권은 거래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행위는 무료 셰익스피어 공연같은 공익 실현 도구에 값을 매김으로써 그 재화의 가치와 품위를 떨어트리고 개인의 이윤추구의 원천으로 삼는다. 

 

 

이러한 거래는 자기 차례를 줄서서 기다리는 줄서기의 도덕을, 더욱 빨리 서비스를 받으려고 가격을 지불하는 시장의 도덕으로 대체한다.
줄서기 도덕은 '선착순' 원칙으로 평등주의적 매력을 지닌다. 따라서 적어도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면 특권·영향력·풍부한 재력 등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 
- p.65

 

나는 책을 읽을 때 '내 주변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나?' 하면서 친숙한 사례를 생각해본다. 

그래서 이 대목에선 롯데월드의 '매직패스'가 떠올랐다. 

얼마전에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롯데월드에 갔다. 자유이용권 한 사람당 2만 얼마인 입장권을 구매해서 갔는데,, 이 입장권은 매직패스를 3회 이용할 수 있었다. 근데 매직패스가 꼭 수강신청같은 개념이라 정해진 시간에 딱 맞춰 재빠르게 버튼을 누른 사람에게 우선입장권이 돌아간다. 이거 잡기가 정말 어렵더라 .. 4년동안 수강신청 허투루 한 것 같다.

어쨌든 자유이용권에 포함된 매직패스 이용권은 이용권이 아니라 말그대로 '매직패스 예매 도전권'이었다. 우린 인기있는 놀이기구 하나도 못 잡아서 3회 쓰지도 못했다. ㅠㅠ

자유이용권에 포함된 매직패스는 그렇다 치고, 롯데월드 입장권 중엔 '매직패스 프리미엄'도 있다. 원하는 놀이기구를 대기 없이 바로바로 즐길 수 있는 서비스로, 자유이용권과는 별개로 금액을 지불하고 사야한다. 

 

 

매직패스 5회권은 4만원, 프리권은 10만원으로.. 후덜덜한 가격이다.

놀이공원이야말로 줄서기의 도덕이 많이 강조되는 공간인 것 같다. 이미 입장할 때부터 표를 구매해야 한다는 점에서 무료 셰익스피어 공연과 차이점이 있지만, 모두 같은 입장권을 사고 줄을 서며 공평하게 놀이기구를 이용한다면 줄서기의 도덕이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매직패스'라는 개념이 생기고부턴 샌델 교수님이 말한 줄서기의 도덕이 시장의 도덕으로 대체되는 현상이 생겨난다. 

줄서기를 통해 통용돼오던 '선착순'이라는 개념이 매직패스를 통해 '돈을 지불한 만큼 획득한다'라는 시장 논리로 바뀐다.매직패스 팔찌를 두르면 어느 놀이기구든 줄을 서지 않고 새치기가 가능하다. 환상의 나라라고 해서 교복도 빌려입고 갔는데 매직패스 프리미엄은 물론이고,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는 것까지 돈을 내야 하는 광경을 보고 환상은 개뿔 시장지상주의의 농축판이라고 생각했다. 롯데월드 안에서는 먹고 하는 모든 것에 값을 지불해야 한다. 각종 음식 냄새로 소비를 유인하고, 롯데월드에 갔으면 회전목마 앞에서 사진은 찍어줘야 하기 때문에 사진기사에게 돈을 지불한다.

사람들은 현실을 잊기 위해 놀이공원에 가지만, 놀이공원이 사실 어느 곳보다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장소인 것 같다. 

 

 

 

 

누구를 위한 생명보험?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을 정도로 재화에 시장이 개입하는 예시를 많이 보았다. 그 중에서도 충격적이었던 건 4장인 '삶과 죽음의 시장' 대목이었다.

이 대목에선 생명보험 증권의 거래 또는 도박을 다루는데, 청소부 보험, 말기환금, 데스풀(Death Pools) 행위가 소개된다.

 

청소부 보험은 회사가 자사 CEO나 고위 경영진같은 회사 중역들이 사망하는 경우에 다른 인물로 대체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상쇄할 목적으로 그들 명의로 생명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다. 그들이 사망할 경우 생명보험금을 회사가 수혜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관행이 최근 일반사원에게까지 행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일반사원은 회사가 자신의 명의로 생명보험에 가입됐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일하다가 죽게 되면 그의 가족은 보험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런 관행은 생명보험을 악용하여 보험의 취지가 변질된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데에 버팀목 역할을 했던 생명보험이 기업의 재정 확보를 위해 쓰이게 된다. 그리고 기업은 직원 명의의 생명보험을 가입하면서 직원을 그저 재정 확보의 수단으로만 본다. 그렇게 된다면 직원이 회사에서 일하다 산업 재해로 죽게 되어도 기업 입장에선 생명보험금을 받으니 손해볼 것이 없다. 오히려 이득이다. 그래서 산재의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노동환경을 개선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말기환금과 데스풀도 충격적이었는데, 말기환금은 '증권 소유자가 자신의 생명보험 증권을 할인 매각하여 대금을 받는 생명보험 전매 형태'라고 명시되어 있다. 에이즈나 기타 불치병을 진단받은, 살 날이 머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환자들이 소유한 생명보험 증권이 거래된다. 생명보험 증권을 산 투자자의 수익률을 환자가 얼마나 오랫동안 사는지에 따라 달렸다. 투자가들이 환자들에게 주어진 여생 동안 돈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권을 산 투자가는 환자가 하루빨리 죽기를 바란다. 데스풀은 유명인사가 언제 죽을지를 예측하는 도박 게임이다. 게임 참가자들은 가입비 15달러를 내고 올해 말까지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유명인사의 명단을 제출한다. 정확하게 예측한 사람에게 상금이 돌아간다. 데스풀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이 상금을 타기 위해 유명인사가 사망하길 간절히 바란다.

말기환금과 데스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자한 대상이 사망하기를 바란다는 점은 도덕적 관점에서 매우 섬뜩하다. 

나는 이런 시장이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역시 미국이나 영국은 시장지상주의가 우리나라보다 지배적이라 그런지 저런 행위들을 법으로도 일정 부분 허용하고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식없이 그저 돈을 벌기 위해 행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예로부터 생명보험과 생명을 걸고 하는 도박 행위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 둘 사이의 경계가 흐리기 때문에 생명보험으로 유가족을 보호하는 사회적 목적을 항상 상기해야 한다. 그 목적을 잊는다면 어김없이 말기환금같은 시장 논리가 들어와서 한 사람의 생명을 돈으로 환산하고, 거래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생명을 가지고 보험을 들거나 도박, 거래를 하는 행위를 여러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하고, 이것에 어떤 도덕적 결점이 있는지 깨닫게 한다. 

 

 

 

 

비시장 규범의 경계


난 지금까지 소비를 해야 살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왔지만, 장기를 사고 판다거나, 매춘을 하는 일에 대해선 거부감이 들었지만 왜 거부감이 드는지는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그냥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니까.. 였는데 책을 읽으면서 156쪽에 등장하는 공정성에 관한 반박, 부패에 관한 반박 부분을 보고 명확해졌다.

 

공정성에 관한 반박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에 반영되는 불평등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부패에 관한 반박은 시장이 훼손하거나 변질시킬 수 있는 태도와 규범을 거론한다.
...
신장 거래 시장이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노린다고 주장한다(공정성에 관한 반박). 혹은 신장 거래 시장이 인간을 여러 부속이 합쳐진 존재로 보는 변질되고 객체화한 인간관을 부추긴다고 주장한다(부패에 관한 반박).
- p.156

 

시장 논리가 비시장 규범에 침범해서 비시장 규범의 도덕적 의미가 퇴색하고 변질되는 걸 우려하는 건 부패에 관한 반박 대목인 것 같다. 시장의 가치평가와 교환이 특정 재화와 관행을 변질시킨다고 보는 관점이다. 무엇이든지 간에 나의 돈을 지불하면 인간은 "내가 내 돈주고 산건데, 왜!"라는 심리가 들면서 아무리 도덕적으로 어긋나는 행위를 했다고 해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고방식에 주의하며 재화를 사고 팔기 전에 특정 재화의 가치, 의미를 재고하며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을 구분짓는 습관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할 것 같다.

 

 

왜 도덕적인 삶의 규범에 맞춰서 살아야 하는가, 시장 논리가 비시장 규범을 어떤 식으로 밀어내고 있는가에 대해서 자세한 예시를 접하며 알게 되었다. 

얼마전에 인스타그램을 내리다 어느 학급에서 지각을 하는 학생에게 지각비를 걷기 시작하자, 학생들이 지각을 더 많이 했고, 지각비가 크게 모여서 반 전체가 회식을 했다는 게시물을 보았다. 책에서도 이스라엘의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가 소개됐는데, 어린이집은 학부모들이 아이를 늦게 데리러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벌금제도를 도입했다. 그 결과, 아이들을 늦게 데리러 오는 경우가 더 늘어났다. 벌금을 늦게 데리러 올 수 있는 서비스로 생각하고, 정당한 돈을 지불했으니 교사에게 불편을 끼쳤다는 죄책감도 없어진 것이다. '벌금'을 '요금'으로 대한 것이다. 

지각비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했다. 학교는 정해진 등교시간이 있고, 지각하면 안 된다는 규범을 지키기 위해 지각비를 정했지만, 그 지각비가 지각해도 된다는 '요금'으로 작동한 것이다. 결과적으론 지각비를 모아서 회식을 했던 해피엔딩 스토리였지만 '지각을 하면 안된다'는 도덕적 규범이 변질된 사례이기도 하다.

 

 

 

책에서 여러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지만 결국 귀결되는 말은 하나다. 

도덕적 규범, 명예, 사랑 등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시장 논리가 침투하면 그 가치가 변질된다. 따라서 끊임없는 재고와 치열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과 있는 것을 구분짓고 재화의 고유한 가치를 지키자

책을 읽으며 경제학에서 놓치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 깊게 알아볼 수 있었고, 앞으로도 이런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서 정말정말 유익한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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